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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머니투데이] 중기칼럼 - 황칠나무 주목하는 이유, 주목해아하는 이유
작성자 고려황칠^^ (ip:)
  • 작성일 2015-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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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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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칼럼] 황칠나무 주목하는 이유,

                주목해야 하는 이유

머니투데이 한규황 고려황칠 대표 |입력 : 2015.05.14 16:03    
               
      
황칠(黃漆)사업을 하면서 관심을 갖고 추진한 일 중 하나가 황칠(黃漆)의 역사적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것이었다. 산업적 측면을 넘어서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황칠이 어떻게 이용되어 왔는지 어떤 의미였는지를 찾아 내고 새롭게 조명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일환으로 황칠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그 가운데 한 분이 『왕실양명술』이라는 책의 저자 이원섭(85) 옹(翁)이었다. 그는 필자에게 매우 흥미로운 사실들을 전해주었다.

[중기칼럼] 황칠나무 주목하는 이유, 주목해야 하는 이유

사진제공=고려황칠


보통 전통의학이라고 하면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을 떠올리는데, 조선왕실에서는 내관(內官)들에 의해 전수되는 ‘내관의학’이 별도로 존재했다고 한다. 동의보감이 서민 의학이라고 본다면 내관의학은 왕실의 건강관리를 위한 궁중의학이라 할 수가 있었다. 그에 따르면 내관의학을 왕실양명술이라고도 했는데 왕실에서의 음식, 술, 차, 약을 담당하는 내관들은 상선(尙膳), 상온(尙醞), 상다(尙茶), 상약(尙藥)이란 직책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들에 의해 전수된 왕실양명술은 질병 치료를 넘어 건강관리비법이라 할만 했다. 이런 비법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많은 서책들이 소실되고, 병자호란 후 중국의 감시가 심해지면서 내관들에 의해 비밀스럽게 전수되어온 것들이었다. 이원섭 옹은 조선 왕조의 마지막 내관이었던 이재우의 외손주로 왕실비전을 전수받을 수 있었고 그것을 저술로 남긴 것이다.

이원섭 옹에게 전해 들은 황칠 이야기 중 일부를 옮겨 보면, “황칠은 중국 황제의 전유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왕실에서도 몰래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네. 황칠의 찬란한 황금 빛은 중국 황제의 권위를 상징했지. 그래서 중국의 CIA라 할 수 있는 동창(東廠)이라는 조직에 의해 감시, 통제가 되었다네. 왕실에서 사용할 때도 이불 안에 은밀히 칠해 사용하거나, 고관대작들의 건강을 위해 사용할 때도 등배/흉배 안쪽에 몰래 사용할 수 밖에 없었지”라며 덧붙였다. “이제야 황칠 세상이 오는가 싶네.” 이원섭 옹과의 만남은 내 가슴을 뛰게 하기에 충분했다. ‘황칠나무는 우리나라 고유수종(固有樹種)으로 우리 것이다. 그런데, 왜 중국의 것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다시 찾아 와야 한다. 우리의 역사가 되어야 한다.

[중기칼럼] 황칠나무 주목하는 이유, 주목해야 하는 이유
사진제공=고려황칠
필자는 황칠이 우리나라 정체성의 상징이라 생각한다. 황칠은 황제의 권위를 상징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켜내는 파수꾼이다. 우리는 지금도 중국과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아쉬운 상황에서 사대주의(事大主義)적인 근성을 벗어버리고 우리의 자존감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은 문화의 시원(始原)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백의민족이 아니던가! 홍익인간 이념을 구현할 상징적 존재가 황칠이 아니겠는가? 이제 그 누구나 상관없이 황칠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었다.

2014년 9월 18일자 한겨레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났다.
“신비의 금빛 도료 '황칠' 실은 통일신라 교역선 첫 확인”
필자는 이 믿을 수 없는 기사에서 눈을 땔 수가 없었다. 해상왕 장보고의 최고 교역품이라고 전해져 왔던 황칠이 실제로 통일신라 교역선에서 발견된 것이다. 무려 1300년이 지났음에도 황칠고유의 황금빛과 안식향(安息香)을 간직한 채로… 다음날,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유물전시와 기자회견이 있었다. 필자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자회견장을 찾아 전시된 황칠을 만나볼 수 있었다. 500cc 정도 되는 도기(陶器)에 들어 있던 황칠을 직접 보고 안식향을 맡아 보았는데 그 감동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황칠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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