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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기칼럼] 중국 거대자본의 황칠시장 진입 귀추 주목
작성자 고려황칠^^ (ip:)
  • 작성일 201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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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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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황칠 한규황 대표

황칠나무는 우리 고유수종의 나무로 우리의 자랑이며 미래다. 또 한민족의 오랜 역사와 동행해왔다. 2006년 경주 황남동 건물 유적지에서 신라시대 황칠이 발견됐다. 2011년 공주 공산성에서 황칠갑옷 발굴, 2014년 통일신라시대 교역선에서 찾아낸 황칠이 공개됐다. 1300년이 지났건만 도기 안의 찬란한 황칠의 황금빛과 그 안식향(安息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중기칼럼] 중국 거대자본의 황칠시장 진입 귀추 주목
사진제공=고려황칠

역사에 나타나는 황칠나무 교역에 관한 일화는 드라마 선덕여왕 14회에서 미실(美室: 고현정분)이 수나라 사신과 나누는 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미실이는 "사신께서는 이번 교역에서 어떤 물품에 관심이 많으시오"라고 묻자 수나라 사신은 "새주(璽主:옥새를 관장하는 관리)님, 지난 번 교역에서 상인들이 가져갔던 황칠에 관심이 많습니다”라고 답하며 수나라 책력(冊曆)과 통일신라의 황칠을 교환할 것을 요구한다.

이익(李瀷)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진시황의 불로초가 바로 황칠수액일 것으로 생각했고 주역(周易) 서의(筮儀)편에는 황칠판을 두고 명상하는 선비들의 로망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몽골의 침입 이후 황칠나무가 원나라에 알려지면서 갑옷과 방패에 칠해졌고 찬란한 황금기병대가 세계를 정복하면서 황칠나무에 대한 주도권은 중국으로 넘어갔다. 이후 문약한 조선왕조는 중국의 강권에 의해 조공품으로 황칠을 바쳐야 했다.

중국 조정은 금빛 찬란한 황칠을 황제의 상징으로 여겨 조선 왕실에서는 공식적인 사용을 금지시켰고 따라서 몰래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은 황칠 조공수탈로 인해 고통 받던 농민들이 황칠나무를 악목(惡木)이라 부르며 밤마다 도끼로 몰래 찍어냈던 아픔을 ‘황칠’ 시(詩)에 담아내기도 했다.

황칠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것으로 황칠 자체에서 발산하는 그 빛과 향으로 말미암아 힘의 상징이었지만 약해진 국력 때문에 중국 황제의 전유물로만 사용되어 우리의 아픈 역사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최근에 잊혀졌던 황칠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황칠산업이 불붙기 시작하여 대규모 황칠농장이 조성되고 본격적인 자본투자도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우려했던 부분도 현실화되고 있다. 중국 거대자본의 황칠시장 유입이다.

필자는 사업가로서 매출과 이익을 각별히 생각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황칠의 숨겨진 역사를 발굴하고 알리는데 주력해 왔다. 그 이유는 황칠만큼은 우리 주권회복의 상징으로 중국 황제의 전유물에서 대한민국의 보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칠은 중국과의 교역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또 다시 그들의 점유물로 그 존재가치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국내 황칠시장에 중국 거대자본의 진입이 우려스럽다. 나는 기업가로서의 이윤창출이라는 현실을 극복하고 우리 민족의 고유한 보물자산인 황칠의 정체성을 보전하겠다는 신념이 있다. 우리 후손들에게 선조들이 누려왔던 황칠의 힘과 존재가치를 고스란히 물려줘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황칠의 역사성과 문화∙ 정신적 가치를 자랑스러운 한민족의 후손인 우리가 지켜내려면 당장 눈앞의 거대 자본과의 겨루기에서 이겨내야 한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무모해 보이지만 명분이 있는 도전인 만큼 그 열매 또한 풍성하게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5120717442382110&outlin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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